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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처럼 하얗고, 바싹 마르기는 했으나 지극히 청초하게 생긴 늙은 스님이 자리잡고 앉아 있다.

그의 두 눈은 쉴 새 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광채를 발산하면서 사방을 휘둘러 보고 있었다. 만약

에 좌석을 전부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각 문파의 대표자나 영도자가 아니었다면, 그

의 자상한 모습만 보고는 어떤 사람도 이 노인이 바로 소림파의 제 이십삼대 영수(領袖)로 혁혁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명원방장이라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명원방장의 왼편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때때로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화기 애애한 기분으로 점잖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은 봉명장의 장주 성수신검 정기봉이었다.다시 그 왼쪽으로는 바로 화산파의

영도자 매소천.명원방장의 오른편으로는 무당파의 영도자 제일명.다시 그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

람은 점창파의 두령 신후 학거비였다.대웅전 안 양편으로는 각각 두 개의 기다란 식탁이 놓여 있고

, 식탁 뒤로는 각각 열 개의 의자가 자리잡고 있으며, 상 위에는 역시 다과 접시와 향기로운 차가

마련되어 있었다.그 자리를 메우고 죽 늘어앉아 있는 사람들은 소림파의 여섯 사람 고승과 각 파의

영도자들을 따라서 이 회합에 참석한 고수급 인물들이었다.다만 하나 예외인 사실은, 화산파의 영

도자 매소천의 신변 가까이에 조그마한 꽃무늬를 새긴 의자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 다소

곳이 머리를 수그리고 앉아 있는 여자가 바로 경혼검 매약화 아가씨였다.대전(大殿) 안의 공기는

별안간 침통해졌고, 죽음이 다가드는 순간같이 으스스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너나 할 것 없

이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엄숙하고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다만 하나 예외의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성수신검 정기봉이었는데, 그 혼자만이 시종 태연 자약한 태도로 입가에 화애로운 미소

를 띠고 있었다.명원방장은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잡고 앉기를 기다려서, 자상한 눈초리로

단숨에 죽 훑어봤다.정중하고 침착한 태도로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종이 울리듯 우렁찬

음성이었다.”여러 영수, 대표자, 두령님들이 이처럼 황폐한 고찰에까지 왕림해 주셨는데, 이 노

승이 용의 주도하게 접대를 못해 드려서 심히 죄송하오. 특히 정기봉 선생께서는 무예계의 이번

분쟁 때문에 흔연히 이 자리에 나와 주셨으니, 정의와 의리를 생명같이 여기시는 그 고매하신

정신에 대하여 이 노승이 외람되지만 여러 문파를 대신하여 충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요!”성수

신검 정기봉이 통쾌하게 웃어 젖혔다.”핫! 핫! 핫! 대사께서는 너무나 겸손하신 말씀이시오! 이 정

기봉은 본래 무예계에서 변변한 재간도 지니지 못했고, 또 박덕한 위인인데 각 파의 영도자, 대

표자 되시는 분들이 끔찍이 생각해 주시고 이 자리에까지 초청해 주셨으니 이것만으로도 평생의

영광인 줄 아오! 어떠한 사태가 발생하든 간에, 이 정기봉과 또 동행해 온 여러 친구들이 여러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