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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랑자는 백면무상의 한쪽 뺨을 손으로 연방 문질러 주면서 한편으로는 실눈을 가느다랗게 떠서 백

면무상의 얼굴을 아무도 모르게 핼끔핼끔 쳐다보았다. 입 귀퉁이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살짝 떠올랐

다. 그 미소는 다음 같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어때? 내가 꾸며 낸 연극은 언제나 실수가 없고 척

척 들어맞잖아?’정말 연극은 각본대로 순조롭게 진행된 셈이다.그러나 백면무상은 흡사 꿀 먹은 벙어

리마냥 쓰다 달다 말이 없었다. 기막히게 괴로운 심정도 그대로 꿀꺽 삼켜 버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여기는 귀수곡에서 얼마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중에 있는 동굴 속.새시천(塞時遷) 연비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맑은 정신을 차렸다. 바깥 세상은 햇빛이 눈부시게 쨍쨍한데도 동굴 속은 칠흑같이

어둠침침했다.오싹오싹 얼음장같이 차가운 기운이 전신으로 스며들었다.그는 자기 주변을 더듬더

듬해 봤다. 땅바닥은 습기가 가득 차서 질척질척했다.벌떡 몸을 일으켜 앉아 봤다. 한옆에서 무슨 소

리가 들려 왔다.뚝! 뚝! 뚝! 뚝!기적같이만 생각되었다.”무슨 소릴까?”한참 동안 귀를 기울여 보고 나

서야 그것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놈들은 나

를 납치해다가 이 동굴 속에 쳐박아 버리고 갔다는 걸까?’머리 속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생각해 봤다.

어젯밤에 초가집 방안에서 사마림 아가씨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장면이 몽롱한 기억 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난데없이 청백이랑(靑白二郎)이란 놈들이 방안에 나타나서 오락가락하던 장면. 바로 그

찰나에 자기는 정신을 잃고 인사 불성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아휴!”그가 긴 한숨을 내쉬고 났을 때

퍼뜩 머리 속에 떠오르는 저주스런 생각이 있었다.’사마림 아가씨는 꼼짝없이 그 백면무상이라는

짐승 같은 놈에게 깨끗한 처녀의 몸을 짓밟히고 말았을 것이다. 천하에 잔인 무도한 놈.’사마림 아

가씨가 억울하게 몸을 유린당했을 생각을 하니 연비는 자신도 모르게 울화가 불길처럼 치밀어 올

랐다.별안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불쑥 허공으로 뻗쳐서 마구 휘둘렀다.딱! 하는 이상한 소리

가 났다. 그의 두 주먹은 동굴의 얼음장으로 뒤덮인 돌벽을 들이친 것이었다.”아이쿠!”아픔을 참

지 못하여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바람

에, 돌연 연비는 다른 한 가지 일을 연상할 수 있었다.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혼자 중얼댔다.”아! 그

놈이 내 몸에 침투시킨 음한독기가 이미 완전히 사그라져 버린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다면야 어

떻게 내가 손과 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그는 더욱 신바람이 나서 시험 삼아 사지를

움직여 봤다. 과연 보통 때나 다름없이 자유 자재로 움직여졌다.다시 한 번 욱! 하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봤다. 손끝까지 힘이 뻗쳐 났다. 이